시간과 공간의 관점에서 본 미디어의 역사

TIME AND SPACE IN HISTORY OF MEDIA

20년 전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실망스러웠다. 전 세계가 정보로 다 연결된다더니 차라리 동네 서점이 나았다. 그러나 폭풍 전야가 1, 2년 흘렀을까, 새로운 세상은 갑자기 왔다. 지금까지 배웠던 틀로는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현상과 사회관계들.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던 시간이었다. 현업에 들어와서는 2G폰으로 모바일 시대를 상상하며 통신사들과 미래를 더듬더듬 준비하기도 했고, 세상을 뒤덮는 소셜 네트워크 바람에 몸을 던지기도 했다(그렇게 벤처를 창업했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매클루언의 40년 전 예언처럼) 내 몸과 뇌의 일부가 되는 시대를 지금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질서가 재편되는 역사적 순간에 놓여 있다. 100년쯤, 500년쯤 지나면 우리가 산업혁명을 읽었던 것처럼 지금 이 순간은 역사의 전환점으로 기록되고 연구될 것이다.

이번 단락에서는 시공간과 미디어의 관계를 중심으로 미디어의 역사를 정리하는 시도를 하고자 한다. 인류는 주어진 환경의 제약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왔다. 시간을 앞당기고 공간을 뛰어넘으려는 노력이 인류의 진화를 이끌었고, 미디어는 항상 그 중심에 있었다.[1] 우리 눈앞에 펼쳐진 미디어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역사적 흐름을 짚어봄으로써 오가닉 미디어 현상을 거시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시야를 확보하고 객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시간과 공간을 횡단하는 미디어의 출현

미디어는 커뮤니케이션 도구이자 환경이다. 기술의 발명이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만든 것이 아닌 것처럼, 미디어는 인류의 역사만큼 나이를 먹었다. 몸짓과 언어, 이미지, 문자, 사진, 영화, 방송, SNS 등 미디어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 미디어는 돌 위의 그림이다. 예컨대 벽화는 석기시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고 사회관계는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미디어다. 당시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기도 하거니와 동시에 지금 이 시대를 석기시대와 연결시켜 주는 수단이기도 하다.

석기시대 인도벽화. (이미지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Stone_Age)

1. 휴대 미디어의 시작

돌 위의 그림은 오랜 시간 보존할 수 있는 반면, 물리적으로 떨어진 지역과의 의사소통은 어렵다는 한계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2] 이에 비하면 양피지에 글씨를 쓰고 두루마리로 말아서 운반한 것은 일종의 혁명이었다. 최초의 원거리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출현이며, 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미디어의 시작이었다.

특히 파피루스[3]를 기점으로 종이 형태가 도입되면서 기존의 기록 중심 미디어에 날개가 달리기 시작했다. 메시지의 휴대가 더욱 간편해졌기 때문이다. 종이 형태는 먼 거리까지 운반하기에 적당했고, 생산하기도 수월했다. 해럴드 이니스(Harold A. Innis)와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 등 많은 학자들은 당시 로마제국이 절대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파피루스의 도입을 꼽는다.[4] 메시지를 기록하고 전송할 수단을 확보하여 먼 지역까지 통제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인데, 이때부터 공간을 통제하는 수단으로서 미디어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2. 우편, 메시지의 공간적 확산

15세기 말에는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배달’을 이용한 최초의 우편 시스템이 시작되었다.[5] 그리고 18세기에는 최초로 구조화된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로서 우체국이 등장했다. 우편은 초기에 귀족들에게만 국한된 미디어였지만 상징적 의미가 많았다. 매개자, 통신원 등의 역할이 생겨나게 되었고, 공간을 횡단하며 소식을 전파하는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생겨난 시점이라고 하겠다.

1882년 소포배달원의 모습을 그린 영국 신문. (이미지 출처: http://postalheritage.wordpress.com/2013/08/01/130-years-of-the-parcel-post/)

1882년 소포배달원의 모습을 그린 영국 신문. (이미지 출처: http://postalheritage.wordpress.com/2013/08/01/130-years-of-the-parcel-post/)

특히 근대에 들어 경제가 발달하고 국제무역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우편은 멀리 떨어진 지역 간의 정보 연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상인들은 유럽 전역의 시장가격을 조사해야 했는데, 16세기에 상인들과 정치인들은 통신원으로부터 각지의 소식을 주간 동향으로 받아 보았다. 우편을 통해 메시지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메커니즘은 당시 확장된 도로, 교통 체계의 발달과 함께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6]

인쇄 미디어, 시공간을 조율하기 시작하다

필사본 매체와 인쇄 미디어는 한동안 공존했다. 유럽에서 인쇄된 형태의 첫 정기간행물, 《메르쿠리우스 갈로벨지쿠스(The Mercurius Gallobelgicus)》가 발행된 것은 1594년이다.[7]인쇄 미디어가 대중적으로 보급됨에 따라 시공간 개념은 더욱 적극적으로 미디어 진화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1. 출판, 지식과 정보의 소유

우편과 인쇄술의 결합은 매스미디어의 시작을 예고했다. 특히 인쇄술의 발명은 한번 작성한 메시지를 동시에 다수의 사람들에게 배포할 수 있다는 것, 모두가 같은 정보를 수용하고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교회에 가야만 예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던 사람들 손에 성경책이 쥐어진 것은 놀라운 사건이었다. 사제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성경 말씀을 일반 가정의 서재에 꼽고 소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서재가 교회의 권위를 무력화하고, 인간은 스스로 주인이 되기 시작했다.

빅토르 위고는 1832년 《파리의 노트르담(Notre-Dame de Paris)》에서 “이것이 저것을 죽일 것이다(Ceci tuera celà)”, 즉 성서(책)가 재단을 죽일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8] 성경책은 상징적인 예시다. 인쇄된 책이 보급되고 집에 서재가 생기는 풍경은 정보를 ‘소유’함으로써 공간의 ‘이동’을 대체하고 권력의 분산을 가져왔음을 의미한다.

거실의 서재는 이제 인테리어의 한 부분이 될 정도로 자연스러워졌다. 앞으로 종이책을 배경으로 한 한 거실 풍경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http://homeklondike.com/2013/05/15/interesting-library-designs-for-modern-home/6-library-room/)

거실의 서재는 이제 인테리어의 한 부분이 될 정도로 자연스러워졌다. 앞으로 종이책을 배경으로 한 거실 풍경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http://homeklondike.com/2013/05/15/interesting-library-designs-for-modern-home/6-library-room/)

2. 신문, 단절된 지역의 연결과 여론의 시작

1631년에 창간된 《가제트(La Gazette)》를 저널리즘의 시초로 보는 견해도 있다. 매주 8쪽 분량을 1200부씩 발행했고, 물가와 시세를 비롯한 다양한 정보를 실었다. 하지만 《가제트》는 루이 13세의 왕권에 귀속된 신문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9] 그 후 왕권과 관계없는 신문들이 공중에게 보급되기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저널리즘이 예고되었다.

역사적으로 신문은 단절되고 분리되었던 마을과 도시를 정보로 연결하고 여론을 형성하였으며, 이른바 ‘국가’ 단위를 형성하는 근간이 되었다.[10] 특히 우편 시스템의 개혁(1840년 우표의 출현 등) 이후 신문의 영향권은 급격히 확산되었다. 예를 들어 프랑스 파리에서 발행된 일간지의 부수는 1803년 3만 6000부였던 것이 1870년에는 100만 부로 늘었다.[11]

1897년 당시 어느 자선바자회의 화재사고를 생생한 이미지로 표현한 프랑스 신문(Le Petit Journal)의 예시. (이미지 출처: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3ALe_Petit_Journal_-_Bazar_de_la_Charit%C3%A9.jpg)

1897년 당시 어느 자선 바자의 화재 사고를 생생한 이미지로 표현한 프랑스 신문 <<르 쁘띠 주르날(Le Petit Journal)>>의 삽화. (이미지 출처: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3ALe_Petit_Journal_-_Bazar_de_la_Charit%C3%A9.jpg)

그런데 인쇄술과 우편의 결합이 공간을 연결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긴 했지만, 기술적 한계는 여전히 존재했다. 배달하는 사람이 실제로 공간을 이동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미디어였기 때문이다. 메시지가 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시스템은 갖춰졌지만 우편을 보내고 답을 받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메시지가 안전하게 전달되었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인쇄 미디어만으로 시공간의 제약을 완전히 넘어설 수는 없었다.

실시간 미디어, 시공간과의 전쟁이 시작되다

미디어에 ‘실시간’이라는 개념이 부여되기 시작한 것은 시각전신(optical telegraph) 기술이 발명된 1793년이었다고 볼 수 있다. 클로드 샤프(Claude Chappe)[12]가 발명한 시각전신을 이용해 거의 실시간으로 신호를 원거리로 전송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른바 텔레커뮤니케이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시공간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1. 텔레커뮤니케이션의 시작

특히 1837년 전기전신(electrical telegraph) 실험에 성공하면서 국가의 경계까지 넘어 메시지를 교환할 수 있는 ‘상호 연결된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가 마련되었다. 영국의 윌리엄 쿡(William Cooke)과 찰스 휘트스톤(Charles Wheatston), 그리고 미국의 새뮤얼 모스(Samuell Morse)가 전기전신을 이용해 국제적인 네트워킹에 성공함으로써 텔레커뮤니케이션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게 되었다.

첫째, 장소에 관계없이 어디서든 메시지를 전송하고 수신할 수 있게 되었고, 둘째, 최초로 국가 간 표준과 규약 등이 필요해졌으며 기술적·행정적 업무를 전담하는 최초의 기구가 설립되었다. 1865년 파리에 설립된 ‘국제전신연합(International Telegraphic Union)’은 지금의 ‘국제전기통신연합(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의 전신이다.[13]

2. 전화, 사회적 공간의 출현

전기전신 서비스는 미디어에서 역사적 사건이었지만, 곧바로 일반인의 커뮤니케이션 관계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공공 기관이 공적인 메시지를 교환하는 용도에 제한했기 때문이다. 개인들이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은 첫 번째 미디어는 전화(telephone)다. 진정한 의미의 사적 미디어는 교환원 없이 개인들이 직접 전화 연결을 할 수 있게 된 187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14]

1892년 Alexander Graham Bell이 뉴욕-시카고간 원거리 텔레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Alexander_Graham_Bell)

1892년 Alexander Graham Bell이 뉴욕-시카고 간 원거리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Alexander_Graham_Bell)

개인 간 원거리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지면서 새로운 유형의 사회관계가 출현하게 된다. 물리적인 공간에 함께 있지 않으면서도 개개인의 사적인 공간에서 친근한 관계를 형성하고 서로 ‘사회적 공간’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사회적 공간이란 화자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서로 함께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상징적 공간을 말한다. 지금 SNS가 마치 새롭게 사회적 공간을 형성하는 미디어로 인식되고 있지만, 돌이켜보면 이미 전화라는 사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형성되면서부터 지속적으로 진화해온 일이다.

시청각 미디어, 시공간을 뛰어넘고 통제하다

전화가 개인 간 상호작용 미디어였다면 전화 이후에 등장한 전파 기술(electromagnetic wave)은 시청각 미디어 시대를 열었다. 전파를 이용한 메시지 전송 기술은 본래 전화를 발전시키고 보완하기 위해 생겨났지만, 실제로는 ‘방송’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점 대 점 네트워크 기반의 전화와 완전히 다른 시스템을 형성하기 시작한 방송 네트워크는 시공간을 뛰어넘었을 뿐 아니라 기술적·사회적으로 시공간을 통제하고 재배열하는 수단으로 발전했다.

1. 공간을 통제하고 이동시키는 힘

시청각 미디어를 통해 공간에 대한 즉각적 통제가 가능해졌다. 흩어진 사람들을 같은 시간에 한자리에 불러 모으게 된 첫 번째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라디오는 문화와 오락을 즐기는 미디어로 시작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까지 정치적 선동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독일의 사회학자 차코틴은 히틀러가 나치즘을 전파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으로 라디오를 지목한 바 있다.[15] 국민들은 각자의 거실에 있었지만 라디오에서 히틀러의 메시지를 듣는 순간에는 수백, 수천만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것과도 같았다.

20~30년이 지나자 거실 공간은 텔레비전의 차지가 되었다. 시청각이라는 화려한 콘텐츠는 온 가족이 모여 앉는 거실을 순식간에 사교장으로도, 전쟁터로도 만들 수 있었다. 지구 전역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었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의 CBS 저녁 뉴스는 베트남 전쟁을 보도하기도 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전쟁에 반대하는 여론을 형성하는 데는 텔레비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16]

2. 유비쿼터스 공간의 출현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텔레비전의 시대를 두 단계로 나누어 제시한 바 있다.[17] 팔레오 텔레비전(Paléo-TV)과 네오 텔레비전(Néo-TV)이다. 전반부는 텔레비전의 공적인 기능, 즉 교육하고 정보를 전달하고 즐길 수 있는 내용을 공중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채널이 점차 늘어나고 광고에 의존하는 시대가 되면서 형태가 달라진다. 이때부터는 시청률이 텔레비전을 지배한다. 공중을 화려하게 유혹하고, 내가 텔레비전 속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스토리가 허구인지 진실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지점, 바로 그 지점에서 공간은 새롭게 탄생했다.[18]

방송 프로그램은 24시간, 일주일 등 시간 단위를 기준으로 편성된다. 9시 뉴스에서 다뤄지는 현실과 곧바로 이어지는 드라마 사이에는 시간의 간극이 없다. 현실과 허구가 다양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모자이크처럼 연결될 때 시청자들은 새롭게 구성된 시간과 공간 앞에 놓인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카즈뇌브[19]는 이미 1970년대에 《유비쿼터스 사회》에서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우리에게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20] 방 안에 있으면서도 화면 속의 이야기 주인공이 되고 발리의 섬도 여행할 수 있는 나, 공간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는 여기에 있지만 동시에 도처에 존재한다.

짐케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쇼(The Truman Show)'의 포스터. 주인공의 실제 삶은 24시간 생방송되는 TV 스튜디오의 삶이기도 하다. 허구와 진실, 실제와 가상의 공간 사이에서 그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미지 출처: http://www.dbcovers.com/image-of-el-show-de-truman-1998-el_show_de_truman_1998_5)

짐케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쇼(The Truman Show)>>의 포스터. 주인공의 실제 삶은 24시간 생방송되는 TV 스튜디오의 삶이기도 하다. 허구와 진실, 실제와 가상의 공간 사이에서 ‘그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미지 출처: http://www.dbcovers.com/image-of-el-show-de-truman-1998-el_show_de_truman_1998_5)

3. 우리에게 부여된 새로운 이름, ‘대중’

공간의 통제는 그 공간에 속한 사람들에게 필연적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게 된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각자가 방에서 소비하든 가족 단위로 거실과 안방에서 소비하든 간에, ‘방송 미디어’는 메시지를 수용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새로운 유형의 사회적 관계를 낳는다. 바로 대중이라는 사회적 그룹이다. 방송을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를 어디서 수용하든, 누구와 함께 있든 동일한 메시지를 동일한 시간에 수용하는, 즉 간접적으로 방송 메시지로 매개된 새로운 유형의 사회 관계망이다.

허버트 블루머(Herbert Blumer)는 대중을 형성하는 구성원들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 바 있다. “사회적 지위와 출생과는 관계가 없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익명으로 존재하며 서로 상호작용하지 않고 경험을 함께 나누는 일도 거의 없다. 구성원들은 군중과는 달리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으면서도 대중이라는 단위를 구성할 수 있다.”[21](현대판 군중의 개념은 2부의 ‘네트워크의 이중성’에서 설명했다.)

오가닉 미디어, 시공간의 구속으로 되돌아오다

텔레비전이 보급되고 50년 후 우리는 인터넷을 만났다. 그럼 인터넷 기반의 미디어와 시공간의 관계는 어디까지 오게 되었을까? 우리는 PC, 태블릿, 스마트폰, 사물인터넷 등으로 어디서든 연결되어 있다.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하여 모든 사람과 연결될 수 있고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이제 시공간을 완전히 뛰어넘었다고 할 것인가? 매스미디어 시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자유로워졌는가? 아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시간의 제약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되었다. 공간을 해체해놓고도 스스로 공간 속에 갇혀 있게 되었다.

1. 시간의 제약 속으로 되돌아오다

검색, SNS, 포털, 블로그 등 각종 서비스를 통해 사람과 정보에 항상 연결되어 있지만, 우리는 연결되면 될수록 더 답답하고 조급하다. 어느 장소에 가든, 카페에 있든 여행지에 있든 네트워크 연결부터 체크하고 네트워크를 항상 휴대하기 위해 조바심을 낸다. 애인과 데이트를 마치고 더 오랫동안 대화하기 위해 각자의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인터넷 페이지가 뜨는 1초도 이제는 견디기가 어렵다. 모든 사람들은 항상 연결되어 있어야 하며 곧바로 전화를 받지 않으면 화를 내기도 한다. 회의 시간에도 휴대폰을 끄지 않고 메일을 수신하고 문자도 보낸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다 못해 너무 많은 메시지가 한꺼번에 도착하고, 아무 때나 접근할 수 있게 되니 이제는 시간을 빼앗지 않는 메시지가 귀해졌다. 그래서 훌륭한 검색엔진, 편리한 편집 도구, 지식이 잘 정리된 블로그, 무엇이든 공유하기 쉬운 SNS를 계속 찾고 있다. 이제는 시간을 아껴주는 서비스들이 생필품이고 가장 중요한 미디어가 되었다. 시간을 뛰어넘고자 했던 인류는 시간의 절대적인 제약 속으로 되돌아왔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일상이자 몸의 일부가 되었다. 2013년 9월 출시된 아이폰의 새로운 운영시스템 iOS7의 이미지 화면. 출시되자마자 15분만에 전세계에서 1억명 이상이 다운로드 받았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일상이자 몸의 일부가 되었다. 2013년 9월 출시된 아이폰의 새로운 운영시스템 iOS7의 이미지 화면. 출시되자마자 24시간만에 전세계에서 1억명 이상이 다운로드 받았다.

2. 공간을 해체하고도 공간에 갇히다

공간은 어떠한가? 오가닉 미디어들은 심지어 물리적 공간의 개념까지 해체하기에 이르렀다. 사용자가 미디어의 중심이 되면서 (물리적) 공간은 아예 사라져버렸다(공간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지와는 다른 논점이니 오해하는 독자는 없을 것으로 믿는다).

도처에서 서비스에 연결되어 있는 사용자들은 사업자가 통제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고 한 장소에 모아지는 대상도 아닌 흩어진 점이다. 사용자들이 서로 대화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움직이는 거리만큼 공간은 확장될 수도 있고 사라질 수도 있다. 오가닉 미디어에서 공간은 이전처럼 뛰어 넘어야 할 대상이나 미리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움직임에 의해 유기적으로 변모하는 결과물이 되었다.

오가닉 미디어 현상을 일찍이 알아차린 서비스들이 있다. 구글은 인터넷 공간을 문서의 연결이 만드는 네트워크로 인지했고,[22] 페이스북은 인터넷 공간을 거대한 소셜 네트워크로 인지했다.[23] 여기서는 사용자든 정보든 ‘연결된 관계’가 공간을 만들고, 사용자의 경험과 활동에 따라 언제든지 공간은 해체되거나 사라질 수 있다. 사용자들의 관심이 모여 핀터레스트(http://pinterest.com)에서처럼 주제별 공간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구글의 검색 결과 페이지처럼 전 세계의 안방이, 책상이, 경험의 흔적이 조각조각 연결되는 결과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오가닉 미디어는 물리적 공간을 뛰어넘은 정도가 아니다. 공간을 해체하고 새로 구성했다.

그런데도 왜 공간에 갇혀 있다고 하는지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공간에 갇혀 있는 것은 미디어가 아니라 우리의 사고방식이다. 우리가 만든 서비스, 사용자의 경험이 만드는 새로운 공간은 이미 물리적 공간을 해체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되고 있지만 사업자들은 여전히 사용자들을 통제하고 싶어 하고, 마케터들은 사용자를 모으려고 하며, 우리는 매스미디어가 그러했듯 메시지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도달했는지로 오가닉 미디어를 평가하려고 한다.

현상은 이미 진화했지만 우리의 사고는 여전히 물리적 공간의 틀 안에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디어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우리는 지금까지 시공간을 기준으로 사고하고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이것을 입증해주는 역사적 체험이다.

역사적으로 시간과 공간의 관점에서 미디어의 진화를 살펴보았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정리하고 한 가지 숙제를 받았다.

첫째, 미디어는 사회관계를 수정하고 재배열하고 변화시켜왔다. 미디어는 더 편리하고 가깝고 긴밀한 사회관계를 위해 시공간과 싸워왔고 인류의 진화를 보여주는 청사진이 되었다. 미디어와 시공간의 관계는 사회관계가 변모하는 과정을 설명해주는 하나의 틀이다. 그런데 그 결과 미디어는 기술적으로 시공간을 초월하기에 이르렀지만 사회관계는 오히려 시공간의 노예가 되었다. 미디어는 진화의 가속도 속에서 저만치 날아갔고, 남겨진 우리는 미디어 역사의 프레임워크에 갇혀 있다.

둘째, 우리가 이미 시간을 뛰어넘고(항상 연결되어 있고 항상 접근할 수 있다) 공간을 해체해버린(사용자는 도처에 있고 주인이며 점이다) 상황이라면, 미디어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미디어가 아니다. 메시지를 빨리, 많은 사람에게, 멀리 도달하도록 하는 것은 과거의 프레임워크가 되었다. 미디어는 페이지를 넘겼고 우리에게는 숙제가 남았다. 기존 미디어가 남기고 간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고 미디어의 새로운 진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관계에서, 사용자 중심으로 미디어를 다시 배우고 다시 시작하는 일이다. 마침내 미디어의 본래 쟁점으로 돌아가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다.

이 책의 여기저기서 미디어를 해부하고, 사용자를 들여다보고, 매개와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틀을 들이대는 시도들은 결국 미디어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고 사고를 전환하기 위한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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